벌써 며칠째 남산을 못 올라가고 있다. 

무릎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당분간 운동하지 말라는 처방 아닌 처방.....


그러나 문제는 미세먼지 였....

오늘은 초미세먼지 평소 6배? 목이 근질근질하다. 


쉬려고 마음먹은 것과 예기치 않게 쉬는 것은 참 다른데

미세먼지 때문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으니 뭔가 억울하기까지 한 오늘. 



12월의 남산은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구기자 같은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도 했는데.


그립다 남산.

지겹다 미세먼지.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서른 살 」 부분

진은영, 「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23p




박상순 「 Love Adagio 

진은영 「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연말 약속이 많은 12월이라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시즌을 돌아보며 오고 간 이야기들이 좋았다. 

더불어 모임에서 영업을 제대로 당해 박상순의 팬이 되었으므로

그의 시집을 모조리 모아보자(읽어보자) 다짐도 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 첫 모임을 기다리고 있다. 두근두근




정리의 의미로, 


+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이 비싼 이유를 말해보자 (개인적인 느낌적인 느낌...)


사실 시를 읽는 모임이 있다는 것만으로, 

게다가 시인 님이 모임을 같이 한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조금 기뻤다. 


트레바리 이전에 3년 정도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의지도 많이 했고, 친목의 성향도 강해서 독서 모임 외에 놀러도 많이 다녔다. 

그러나 책을 위한 모임에서 대화가 더 깊어질 수는 없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제일 얕았으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중심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말하고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배워가는 것도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이 그랬고, 시밤이 그렇다. 



시밤이 클럽장 모임이라 좋은 이유는, 


1. 시를 해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클럽장님은 박상순 시인의 시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박상순의 시를 읽다 보면 이유도 모른 채 울컥할 때가 있다.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지만 좋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시가 좋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해석도 이유도 모르겠지만 좋은 것, 마음을 조금은 흔들어 놓는 것, 그 자체가 시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라고.



2. 시와 시인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개인적인 사생활이나 씹을만한 가십거리가 아니라, 시인이 작업하는 방식이나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다.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는 시들도 있어서, 매번 이야기 듣는 것이 즐겁다. 



물 위의 암스테르담 


아빠는 두려워서 가지 못한단다

아들아, 딸아! 너희들이 대신 갈 수 있겠니?


물 위의 암스테르담

아직 열세 살인 너희들의 엄마가 있고, 

아직 아홉 살인 너희들의 아빠가 있고

죽은 기린이 있고, 죽은 코끼리가 있고, 죽은 앵무새

가 있고


죽어서도 어여쁜, 꽃들이 있고

죽어서도 떠다니는 연인들의 벌거벗은 몸이 있고


아빠가 타고 온 배들이 있고

아빠가 끌고 온 해일이 있고

아빠가 들고 온 폭풍이 있고

사람이 있고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고, 아빠가 만든 사람이 있고,

아빠가 무너뜨린 사람이 있고

아직 스무 살인 엄마가 있고, 아직 마흔 살인 엄마가 

있고


죽어서도 어여쁜, 꽃들이 떠다니는

죽어서도 슬픈 별들이 떨어지는

물 위의 암스테르담, 떠다니는 진화의 유체(流體)

아들아, 딸아! 너희들이 갈 수 있겠니?

아빠는 무서워서 가지 못한단다


아빠 대신 갈 수 있겠니. 갈 수 있겠니

그래도 한번쯤은 엄마에게 말해 줄 수 있겠니  



박상순, 「 Love Adagio , 39-40p


이 시가 특히 그랬다. 

임신 중절이 불법이었던 때에 몰래 아이를 지우기 위해 

암스테르담까지 배를 타고 건너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혼자 읽을 때는 읽고 그냥 지나친 시였는데,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몇 번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보게 되었다. 






기록용. 네 번째 독후감 ========================================================



#1 나의 푸른 봄은 어디쯤에서 손을 흔드나

-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 서성거렸다

...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리며 / 언제나 가뭄이었다


<청춘 1> 부분


맞아 죽고 싶습니다 / 푸른 사과 더미에 / 깔려 죽고 싶습니다


<청춘 2> 부분


사이 만을 돌아다니던 때와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던 때. 진은영 시인의 청춘 1과 청춘 2가 쓰인 시간의 간격을 알고 싶었다. 

나 또한 늘 가뭄이어서 알맞게 영글어본 적 없던 때가, 무엇으로든 맞아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몹시도 궁금했다. 시인의 청춘 연작시는 어디쯤에서 뒤를 돌아보며 썼는지.

아라공의 말처럼 어느 즐거운 저녁때 돌아본 청춘의 모습이 보기 어땠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시를 읽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은 나의 어느 시절일까도 생각하며 읽게 됐다.


봄에서 여름이 가고, 가을도 지나고, 겨울에서 다시 봄이 된 어느 한 시절을 기억한다. 그 시절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내가 있고, 네가 있었고, 조용하면서도 소란스러운 적막 가운데 서로의 발의 리듬을 맞추어 보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를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으므로,

즐거운 저녁때가 아니더라도 공들여 돌아보는 장면이다. 그 시절, 여전히 나는 가뭄이었고, 서성거렸고,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왜인지 그것들은 휘발되고 스스로도 부러운 청춘의 모습으로만 남았다. 


청춘의 연작시가 4개나 있는 것을 보면, 진은영 시인의 청춘도 하나의 모습, 하나의 시절은 아닐 터, 오늘의 나는 또 어느 미래의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일까.



#2 내가 여기 있다고

-박상순의 < Love Adagio >를 읽고,


<창밖에>


창밖에 네 사람이 서 있다 / -그해 봄에, 그해 봄에 / 나는 연인 곁에서 길을 잃었다 /

창밖에 세 사람이 서 있다 / -그해 여름에, 그해 여름에 / 나는 연인 곁에서 길을 잃었다 / 

창밖에 두 사람이 서 있다 / - 그해 가을에, 그해 가을에 / 나는 연인 곁에서 길을 잃었다 / 

창밖에 한 사람이 서 있다 / - 그해 겨울에, 그해 겨울에 / 나는 연인 곁에서 길을 잃었다 /


창밖에 사람들이 서 있다가 사라졌다.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더라도 그들을 마주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과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 가도록 내게 일어난 일, 창밖의 풍경이 점점 비워져 간다는 것. 게다가 4계절을 보내는 내내 나는 옆에 연인을 두고도 길을 잃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면 창밖에는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조차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좌표를 상실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이 하나 없는 세계에서 내가 여기 있다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박상순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줄곧 달아나거나 사라진다. 자기를 장면에서 지우는 방식으로 내가 한때나마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를 읽으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도대체 무엇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앞에서 또 길을 잃는 심정이 되었다. 아주 긴 인생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들여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HAPPY NEW YEAR!



이것도 벌써 작년의 일, 

지난달 db판화 작업실에서 리소그래피 2주 과정을 들었다. 




1주 차에서는 1도 인쇄,

2주 차에서는 2도 인쇄로 새해 카드 만들기를 진행했다. 


덕분에 묵혀두었던 아이패드를 꺼내

발그림도 그려보고 (이렇게 못 그리진 않았는데....)

리소라는 인쇄 기법도 알게 되고 이래저래 재미난 연말을 보냈다. 




여러 가지 종이를 준비해 가서 찍었더니, 종이 표면이나 색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나왔다. 





새해 카드 Ver. 1 시밤 새해 카드 


12월에도 트레바리 모임이 있으니 시밤 식구들 카드도 만들어야지 했는데, 

어느덧 4가지 버전 카드가 모두 시를 위한 새해 카드가 되어버렸다. 





시밤의 김상혁 시인님을 그리고 싶었으나, '넌 누구니?'

(닮지 않았습니다. 더 멋있으세요....정말로요)





새해 카드 Ver.2 황금돼지 새해 카드 


황금돼지라 돼지, 꽃, 음표라고 그렸으나 바나나가 된....생각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리소그래피는 형광 느낌이 쨍하게 나고 종이 질감에 따라 인쇄가 달라져서 매력 있다. 

 




새해 카드 Ver 3. 새해 소망 카드


하늘을 조금 더 자주 보고 살고 싶으네. 








새해 카드 Ver 4. 망했다 카드



리소는 보통 연한 색을 바탕으로 찍고, 진한 색으로 글자나 포인트로 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꿔서 인쇄해봤더니 블루가 너무 진해서 핑크색이 눈에 잘 안 띄게 나와버렸다. 



 

덕분에 만나는 사람마다 빈손으로 새해 인사를 건네지 않아도 되었는데, 

내 사람들은 언제 만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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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그래피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거슨 선생님의 일...



그래도 덧붙여보자면, 


1. 2도 인쇄를 찍기로 마음 먹는다. 

2. 두 개의 색을 신중히 고른다. 

3. 각 컬러에 해당하는 그림 작업을 따로따로(포토샵-레이어) 한다. 

4. 첫 번째 컬러(상대적으로 연한 컬러)에 해당하는 부분을 리소 인쇄기로 찍는다. 

5. 하나의 컬러가 찍힌 종이가 나오면 인쇄기에 다시 넣는다. 

6. 두 번째 컬러를 리소 인쇄기로 덧찍는다. 


첫 번째 색(연한색) : 바탕이나 상대적으로 넓은 면을 처리할 때 쓰자.



두 번째 색(진한색) : 보통 글자나 포인트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작업한다.


합치면? 요런 느낌~ 최종 인쇄되는 느낌을 포토샵으로 확인하면 감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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