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에

 "남산타워가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세상이라니"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산타워 기둥 색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서울타워 색깔에 관한 이야기. 

남산타워의 기둥 색깔은 대기질에 따라 변한다. 


빨간색이면 나쁨

초록색이면 보통

파란색이면 좋음


"터 잡고 사는 땅의 꼴이 이렇다 보니 더욱 여행을 꿈꾸게 된다."


__45p,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마냥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작가는 여행을 꿈꾸고, 

나는 요 며칠 정말이지 기도하는 심정으로 매일 남산타워 기둥의 색이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그리고 오늘. 

잠깐 미세먼지가 주춤한 오늘.

체감온도 -12도라지만 그래도 오늘은 하늘도, 남산타워도 더없이 파랬으므로.

오랜만에 엄마도 나도 신났다. 


"세상이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건

인간이란 어디까지 긍정적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지옥도 정겨워질 때까지가 아닐까." 


__ 115p,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


남산을 내려오면서, 엄마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이놈의 세상이 어쩌려고 이러나 몰라." 


"그래도 미세먼지 덕분인지 때문인지 이런 날이 더 감사하게 느껴지잖아. 내일도 파란색이면 좋겠다, 엄마."


아, 나 조금은 긍정적인 인간인가 싶었는데. 

빌어먹을 내일 또 미세먼지라니.
















벌써 며칠째 남산을 못 올라가고 있다. 

무릎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당분간 운동하지 말라는 처방 아닌 처방.....


그러나 문제는 미세먼지 였....

오늘은 초미세먼지 평소 6배? 목이 근질근질하다. 


쉬려고 마음먹은 것과 예기치 않게 쉬는 것은 참 다른데

미세먼지 때문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으니 뭔가 억울하기까지 한 오늘. 



12월의 남산은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구기자 같은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도 했는데.


그립다 남산.

지겹다 미세먼지.






작년 9월부터 새벽에 일어나 엄마와 남산을 걷기 시작했다. 

남산이라고 해봐야 서울타워는 구경도 못하고, 

집 근처 둘레길을 걷는 것만 해도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미세먼지 심한 날과 코가 떨어질 것 같은 강추위 때만 빼고는 4개월을 줄곧 걸은 셈이다. 


잦은 과식으로 둘 다 드라마틱 한 체형 변화는 없지만(역시 다이어트는 식단 조절...)

다이어트 그 영원한 숙제와는 별개로 엄마와 나는 이제 거의 남산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남산을 걷지 않으면 왜인지 하루가 유독 길고 피곤하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아 좋다, 아 좋으네, 너무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엄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매일 아침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낄낄거리는 것이 꼭 남산 바보들 같지만, 

이따금 참지 못한 웃음이 터져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런 웃음은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올해에 계획한 것 중에 하나가 블로그를 꾸준히 하는 것인데,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라 그래도 그나마 매일 하는 것이 걷는 것이라 이것을 일기처럼 쓰다 보면,

오키나와 여행기도 책을 쓰는 일도 시를 읽는 일도 그림을 그리는 일도

자연스레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걸으면서 보낸 시간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지난 가을 남산은 참 예뻤는데, 계절의 변화도 같이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올해 남산에 몇번이나 올라갈 수 있을까.

미세먼지의 공습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남산 타워까지 가볼 날이 올까.

그나저나 살은 뺄 수 있을까.

엄마라는 사람을 더 알 수 있게 될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엄마가 더 이해하게 될까.


걷다 보면 알게 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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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후에 걸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가물치를 고와 마셨다는 것과

어릴 때 집에 때마다 끓여놓던 곰국을 정작 엄마는 싫어한다는 것.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될 줄 알았냐는 질문에,

"하여간 너는 신문지로 오리고 붙이고 뭘 그렇게 만들더라" 하면서

할아버지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얘는 미술 시켜야겠다"라고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엄마의 기억에는 몰랐던 나의 어린 시절이 있어 듣다보면 어린 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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