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 시밤_두 번째 모임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

문보영 <책기둥>



모임 때마다 사진으로 기록해와야지 해도

이야기하느라 듣느라 시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다. 

분명 서너 장은 찍어온 것 같은데 찾아보면 없는....


'이런 게 현대시구나' 시알못인 내게 읽는 재미를 던져준 문보영의 <책기둥>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무려 작년의 일이므로

클럽장님의 가르침으로 급 마무리. 


"줄거리에서 벗어나고 인과관계에서 탈피하는 것이 현대시를 읽는 법 중의 하나"


시밤은 격렬한(?) 북토크를 마치고, 어떤 시집이 더 좋았는지 투표를 한다. 

난해하고 어렵게 읽힐까봐 걱정했다는 클럽장님의 우려와는 다르게

<책기둥>을 선택한 이가 많았다. 나 역시도.



아래는 기록용, 제출 독후감 ----------------------------------------------------------------------------------------


문보영의 <책기둥>을 읽고



풍선 안으로 이쑤시개 넣기


터질 것 같이 빵빵하게 부푼 풍선 안으로 이쑤시개를 넣을 수 있을까. ‘보나 마나 터지겠지’ 라고 생각해버리는 게 보나 마나 뻔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뻔하지 않다. 이쑤시개 꽂을 부분(정확히는 풍선 매듭의 부근)을 잘 선택하면 뾰족한 그것을 몇 개든 풍선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보고도 쉽게 믿기지 않으므로 마술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성공적으로’ 이쑤시개를 품고 있는 풍선이 마치 문보영 시인의 <책기둥>의 시적 화자들 같다고 생각했다. 

모양새만을 보고 “(영락없는) 풍선이네.” 하며 섣불리 판단하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뾰족한 그것들이 보이는 방식으로, <책기둥>의 시적 화자들은 ‘내게도 박힌 이쑤시개가 몇 개쯤은 있지’라고 태연히 내뱉는 것 같았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뾰족하고 슬픈 것들을 ‘아무튼’ 느끼게 하는.

해석하려는 자세로 시를 읽는 것이 '시의 존재’ 만큼이나 무용하다는 것을 책기둥을 통해 조금 알아낸 것도 같다. 해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굳이 해석을 더해 의미 있고 완결된 이야기로 만들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꼭 그렇게 다물려지지는 않는 기묘한 이야기의 전개이다". 해설을 읽고 나서 목 부근까지 잠긴 셔츠 단춧구멍 하나쯤 푼 기분으로 읽으니 한 구절 한 구절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암호 같은 시어들을 여전히 해독하고 싶은 심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벽을 해명하는 데 일생을 거는 벽"이 되거나, "브래지어가 없는 F"가 되어버리는 체험을 이따금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코 아래 입술이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수상해 하기도 했고, "슬퍼하지 않은 것도 슬퍼한 것의 일부가 되는 계절"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또 이따금 다른 이에게 느꼈던 마음이라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50억 배 확대해 보고야 마는 나쁜 마음"이었다는 슬픈 진실도 깨닫게 됐지만 동시에 저릿한 해방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제멋대로 고유명사도 되었다가 부사나 동사가 되어보기도 하면서 점점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쉽기만 했던 시집이다. 

이렇게 쓰고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글로는 좀처럼 정리될 것 같지 않다. 그 핑계 삼아 옆에 두고 오래오래 읽고 싶다. 

참 그러고 보니 내 애인도 뇌를 두고 떠났는데, 그는 알까. 서로의 비스킷 씹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헤어진 것이었음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밧줄이었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로 많이 읽어본 적 없는 시알못이지만,

시집을 읽다가 주저앉아 울어본 적은 몇 번인가 있다.

그러므로 시집을 모으는 데 그럴듯한 핑계가 생긴 셈이다. 


집에 시집은 몇 권 되지 않는데 우연찮게 모두 문학동네 시인선이다. 

지하철을 오가며 몇 번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시집이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컬러해!


한 번 보고, 두 번 보니, 

나도 모르게 광고가 머리 속에 박혔나. 

사고 보니 또 문학동네 시인선. 난 시인을 보고 산 것인데요.......


그러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마침 이사를 가니, 

마침 이사하는 집 거실에 조그만 붙박이 책장이 있으니, 

마침 생일이고 하니, 

마침 시집도 너무 예쁘고 하니, 

시집을 모아보자. 




그렇게 도착한 지나씨의 선물. 시인선 리스트 중 내가 가진 시집들은 빼고 골라서 보내달라 했더니 이렇게 보내줬다. 

선물하는 사람의 취향을 보게 되어 더 좋은 듯. 아무튼 고맙습니다. 


시를 휘리릭 빨리 읽을 수는 없으니 천천히 공들여 있을게에. 


요즘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 시. 동진DJ의 푸른밤에 사연까지 보낸 시인데,

한동안 누군가의 가족으로서의 나를 반성케 하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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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메시지

                  -이문재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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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계속 울기 위해 시집을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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